현대인의 일상은 ‘연결’이라는 명목 아래 끊임없는 비교에 노출되어 있다.
손바닥 안의 작은 화면을 통해 타인의 화려한 단면을 보고, 그들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숨 가쁜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인문학적 성찰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그 속도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비교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장자(莊子)는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소요유(逍遙遊)’라 불렀다.
남이 세워둔 기준에 나를 맞추는 것은 내 삶의 권리를 타인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
비교는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대개는 내 안의 고유한 빛을 가리는 장애물이다.
타인과 비교하기를 멈출 때, 비로소 ‘나만의 보폭’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 때문에 ‘착함’과 ‘친절’을 혼동하곤 한다. ‘착함’이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수동적인 태도라면, ‘친절’은 내면의 단단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건네는 능동적인 배려다.
나를 비하하면서까지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자기 학대’에 가깝다.
진정한 관계의 시작은 나만의 주체성을 당당히 지키면서도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건강한 거리 두기에서 시작된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강조한 ‘미움받을 용기’ 또한 나로 살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다.
이는 단순히 고집불통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를 내가 통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지혜다.
모든 이에게 사랑받으려는 노력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나의 방식대로 당당하게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나로 산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라는 좁은 감옥에서 걸어 나와, 내면의 목소리가 이끄는 광장으로 당당히 나아가는 일이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오늘 하루는 점 하나에 불과할지 모르나, 그 점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생(生)이 완성된다.
매일 운동을 하며 근육을 단련하듯, 마음의 근육 또한 매일의 성찰을 통해 길러야 한다.
잠들기 전, 오늘 나의 친절에 비굴함은 없었는지, 나의 거절에 무례함은 없었는지 돌아보는 시간은 가장 정직한 수행의 시간이다. ‘오늘이 가장 의미있는 날’이라는 자부심으로,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나의 자각으로 하루를 갈무리 하자.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깊어진 나를 발견하는 기쁨,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이자 삶의 정답이다.
